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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멕시코 한인신문

나치와 싸우는 charros? 잊혀진 멕시코의 2차 세계대전 방어군

최종 수정일: 4월 16일


멕시코 혁명 참전용사이자 정치가인 Antolín Jiménez는 멕시코 대통령 Camacho를 설득하여 멕시코의 전통 마술인 charrería 전문가들로 구성된 멕시코 게릴라 군단을 결성하여 나치의 침략 가능성에 맞서 싸울 것을 요청했다. (Mexican National Archives 멕시코 국립문서보관소)




1942년 초 멕시코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비교적 무관심했다. 멕시코의 전쟁이 아니었고유럽은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입이다.

그러나 멕시코가 마침내 전쟁에 참전했을 때, 멕시코는 최전방 방어선을 위해 예상치 못한 자원인 멕시코 게릴라 군단, 즉 나치가 멕시코를 침공할 경우 싸우도록 훈련받은 멕시코 전역의 charros(멕시코 카우보이) 조직을 선택했다.


멕시코의 charros는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오랜 전통이었으며, 식민지 시대에 스페인 지주들이 자신의 농장을 보호할 남자가 필요해지면서 생겨났다.


히틀러는 멕시코의 석유 매장량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위협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독일 역사학자 Friederich Katz에 따르면 나치당은 독일 대기업의 지원을 받아 멕시코의 정치와 경제에 침투했다고 한다. 역사가와 작가들은 제 3제국이 멕시코의 독일 공동체에 미친 영향에 대해 기록했는데 멕시코 수도에서는 유대인, 중국인, 공산주의자, 노동조합원 등에 대한 폭력 사태가 발생했을대 독일 기업 문 앞에 만국기를 달아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그러던 1942년 5월, 멕시코만에서 독일 잠수함이 멕시코 유조선 Potrero del Llano 호와 Faja de Oro 호를 어뢰로 공격하여 침몰시키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Manuel Ávila Camacho 멕시코 대통령은 1942년 5월 28일 중립을 포기하고 전쟁 동맹인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다.



멕시코의 제2차 세계 대전 선전 포스터. 이 선전 포스터는 멕시코가 카마초의 선전포고(맨 오른쪽)를 자유와 평등주의를 위한 멕시코의 이전 투쟁과 어떻게 연결하려 했는지 보여준다. 그는 미구엘 이달고(Miguel Hidalgo), 베니토 후아레스(Benito Juárez), 프란시스코 1세 마데로(Francisco I. Madero) 등 멕시코의 전쟁 영웅들과 함께 있다. (칼리지 파크 국립 문서 보관소)



그러나 멕시코의 육군과 공군은 규모가 작았고 전문적으로 훈련받지 못했다.

탱크도, 전투기도, 잠수함도 없는 등 정교한 장비는 존재하지 않았다. 카마초는 멕시코 국민들의 애국심과 독창성에 의존해야 했다. 전쟁을 선포하는 연설 말미에 대통령은 국민에게 호소했다. "멕시코는 모든 국민이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를 기대합니다."


멕시코 혁명의 애국적인 전직 전투원이자 전국 차로스 협회 회장인 Antolín Jiménez Gamas는 대통령의 요청에 응답했다. 그는 나치가 멕시코를 침공하면 차로스(charros)를 민병대로 조직하여 나치에 맞서 싸우자고 제안했다.


오늘날에도 차로스가 수행하는 기마술 전통인 차레리아(Charrería)는 스페인 정복 당시 부유한 지주들의 농장을 보호하기 위해 입대했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차로스는 숙련된 기수였으며 마체테(machetes 농민들이 허리에 차고 다니던 농사용 칼)와 권총을 사용할 줄 알았다.


카마초는 그의 제안에 동의했고, Jiménez는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두 달 후 멕시코 게릴라 군단을 결성했다.


그 후 그는 친구이자 멕시코 혁명의 장군이자 카마초 정부의 국방부 장관이었던 라사로 카르데나스(Lazáro Cárdenas 1934~1940) 전 대통령과 다른 혁명 전직 전투원들의 도움을 받아 카로스들에게 군사 전략과 게릴라 전술을 훈련시켰다.


차로스들은 나치의 침공에 대비해 앞으로 1년 동안 매주 일요일마다 훈련을 받았다.


멕시코의 선전포고는 멕시코 내부의 이데올로기에 봉착했는데 시티에서부터 동요가 일어났다.

나치를 지지하거나 동조하는 자들은 독일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 익명으로 활동했다. 민족주의자인 호세 바스콘셀로스( José Vasconcelos ) 같은 지식인 조차도 나치 독일을 지지했다.



1930년대 멕시코시티에 존재했던 독일 영향을 받은 파시즘의 한 예로, 'Gold Shirts'라고도 알려진 혁명적 멕시코주의 행동은 공산주의자뿐만 아니라 중국인과 유대인을 멕시코에서 추방하고자 했다. 이들은 독일 나치당의 지원을 받았다. (INAH)



멕시코시티 독일인 커뮤니티의 충성심은 분열되었다. 많은 저명한 독일 이민자들이 전쟁에 반대하고 자유 독일 운동에 참여했다.


전통 의상을 입고 말 위에 앉아 있는 자랑스러운 멕시코 남성인 차로스는 멕시코의 애국적인 상징이 되었다. 그들의 모토는 "조국을 위한 모든 것"이었다. 지지자들에게 그들은 "나쁜 놈들"의 상징인 나치에 대항하는 "좋은 놈들"을 상징했다.


멕시코 전역의 신문은 Jiménez가 나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전국 250개 지역에 15만 명의 차로스를 조직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선전했다.


마체테(machetes)와 권총을 든 차로스가 나치의 중무장한 탱크와 전투기에 맞서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지금은 우스꽝스러워 보일지 모르지만, 차로스는 전쟁에서 자신의 역할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멕시코 역사에서 전통과 현대는 종종 대조적이며 때로는 갈등을 빚기도 한다.


카마초는 차로가 조국을 지킬 수 있다고 확신하면서 동맹국을 도울 다른 방법을 모색했다. 그는 멕시코 원정 공군(FAEM)을 창설했다.



차로스(charros)와 차레리아(Charrería)는 오늘날에도 주로 스포츠로서 존재하고 있다. (신데폴/위키미디어 커먼즈)




멕시코는 영토분쟁 등 미국과의 전쟁 이후 불안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카마초는 미국과 나란히 나치에 맞서 싸우며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열었다.


미국은 탱크와 비행기 생산을 위한 원자재가 필요했다.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과 카마초 대통령은 동맹을 맺었다. 멕시코는 미국에 필요한 원자재를 제공하고, 미국은 그 대가로 멕시코에 비행기와 조종사 훈련을 제공하기로 했다.


아즈텍 이글스(Aztec Eagles )로 알려진 원정 공군 201 비행 대대원 300명이 훈련을 위해 미국으로 파견되었다. 1943년 6월, 수개월간의 강도 높은 훈련 끝에 아즈텍 이글스는 필리핀에서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 동아시아로 파견되었다. 그들은 용기와 치열함에 깊은 인상을 받은 미군 조종사들과 함께 나란히 싸웠다.


전쟁은 1945년 9월 2일 일본의 항복으로 끝났고 아즈텍 이글스는 영웅 대접을 받으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나치는 멕시코를 침공하지 않았고, 영웅으로 여겨지던 멕시코 게릴라 군단은 전투를 치르지 못하고 해산했다.


멕시코의 차로는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오랜 전통이었지만, 식민지 시대에 스페인 지주들이 자신의 농장을 보호할 남자가 필요해지면서 생겨났다. (Fernando Llanos)



Antolín Jiménez Gamas와 멕시코 게릴라 군단의 이야기는 2014년 히메네스의 손자이자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인 Jiménez’s grandson Fernando Llanos 가 할아버지의 유품과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언론 스크랩을 발견하기 전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가족에게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던 가족 역사였다. Llanos 는 할아버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히메네즈가 출판업자이면서 PRI(제도혁명당)의 창시자 중 한 명이며 하원의원에 세 번이나 당선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할아버지 히메네즈(Jiménez)의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4년간의 연구 끝에 라노스는 나치의 침략에 맞서 싸운 할아버지와 카로스에게 헌정하는 다큐멘터리 'Matria' 를 제작하여 2014년에 공개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2014년 모렐리아 국제 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당시 라노스는 할아버지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해야 한다면 'Todo por la Patria 조국을 위해'라는 모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날에도 전국 차로스(charros) 협회는 여전히 존재하며, 멕시코 전역에서 승마 전통인 차레리아(Charrería)가 시행되고 있다. 2016년 유네스코는 차레리아를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등재하면서 이 전통을 보유한 공동체의 정체성과 문화유산, 존중과 평등과 같은 중요한 사회적 가치의 중요한 요소로 꼽으며 새로운 세대에게 계속 전승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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